최은아, 평론, 2013

우리가 사는 혹성에 대한 신선한 백일몽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감을 느끼는 역동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가 찾아왔다. 오는 2월 21일(목) 부터 3월 17일(일)까지 서초동 ‘153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 캐스퍼 강의 개인전 < 新羅Z>이 그것이다. 캐나다 교포로 2004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캐스퍼 강은 전공인 건축학 관련 일을 하다가 지난 2006년부터 전문화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신진작가.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굽히지 않는 열정으로 매년 개인전과 단체전을 갖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작가다. 이번 전시 역시 민화와 한국전통 문양을 소재로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통해 현대 사회가 상실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새로운 쟝르? 새로운 기법? 하지만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아크릴과 스크린 잉크를 사용해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페인팅 기법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의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건축학도 다운 꼼꼼하고 섬세한 터치로 만들어진 정교함. 그리고 터치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에 담긴 주제가 그것이다. 작품의 주제는 그의 독특한 페인팅 스타일 못지 않게 그의 작품을 유니크하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다. 모든 작품이 그러하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특히 캐스퍼 강의 전시에 동참하려면 먼저 타이틀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잇는 작품들만 봐도 그렇다. <banishment : 추방>, <disillusionment : 환멸>, <imperial guard : 제국의 경비>, <seclusion : 격리>, <wilderness : 황야>라는 마음이 서늘해지는 타이틀마다 우리 고유의 상징들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범상치 않은 작품들이 담겨있고 우리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잊었던 것들, 상실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민화, 탈춤, 성곽…과 같은 우리 고유의 상징들에 주목하는 걸까.

“캐나다에서 자란 나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신비하고 오묘했죠. 문화적 유산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애증이나 개인적 견해 등의 편견 없이 보이는 그대로의 외형에 제 감성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원화성을 동화적 감성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저만의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하지만 한국 전통문화의 또 다른 표현에 그쳤다면 캐스퍼 강이 영향력 있는 신진작가로 주목 받을 수 있었을까? 작가는 건축학도다운 치밀하고 구조적인 문화유산의 아티스트적 재해석에 목소리까지 담아 강렬한 이미지 매체로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 목소리는 바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권력인 자본과 생명을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문명에 대한 경각의 경각의 목소리. 우리의 시대가 잃고 있는 것들과 지켜야 세상을 잠식하는 위험요소들에 대한 시대적 분위기를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통해 작품에서 비틀어 표현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점이 캐스퍼 강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상실과 과잉의 시대’. 어쩌면 캐스퍼 강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결핍과 과잉이라는 두 가지 현상의 상극적 혼재에 대한 그만의 백일몽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목소리나 노력만으로는 바꾸기 힘든 거대한 세상에서 작가는 그가 바라고 희망하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동안 살아온 삶, 끝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왠지 낯선 혹성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 어쩌면 캐스퍼 강의 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회는 차갑고, 삭막한 지구라는 이 혹성에서 만나는 공감되는 신선한 ‘백일몽’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