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영 - 미지의 무(無)를 향해 이지러지는 별, 2022

보이느니 난무하는 빛의 파편이요, 들리느니 한없이 진동하는 공명이다. 캐스퍼 강의 작업은 불가해한 세계에 잔류하는 별들의 시간과 빛깔을 한지에 담는다. 기염을 토하며 부딪쳐 오는 유성과, 남겨진 연소의 흔적을 물결처럼 흘리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가 표현해낸 별들의 명멸은 완전하게 추상의 영역에 있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국 고유의 민화에서 형식을 탐구한 작업들을 선보이던 가운데, 2017년부터 이와 같은 추상 회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지는 민화의 토대가 되는 매체이므로, 《노스토스》에 전시된 그의 추상화는 민화를 대상으로 한 그의 실험이 요체만 남은, 고도로 정제된 극치에 달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캐스퍼 강의 작품은 형상 없는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은하에는 한지의 물성과 이것에 물리적 변화를 가하는 작가의 행위, 그리고 깊은 정신의 무늬가 교착되어 있는 까닭이다.

식물섬유가 원료인 한지는 보존 기간이 길고, 높은 탄력성과 번짐성을 갖는다.[1] 한국의 전통 유산을 재해석해온 강 작가는 이러한 한지의 물성을 이용해 무한한 실험의 가능성을 열었다. 여기서 그의 실험이란 물리적인 가해를 가함으로써 한지의 물성을 비워내는 일이다. 명상하듯이 한지를 그을리고 락스로 표백하며, 가르고 닳게 하는 것이다. 종국에 그는 ‘공백’을 향한 열망을 태우며 최후의 무엇까지 발돋움하다가, 소멸의 직전에 이 쇄도하는 스파크를 일순 거두어낸다. 그러면 한지의 남은 입자와 시간, 작가의 의식이 일체로 유보된 상태를 유지하며 화폭을 부유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바탕이었던 물성이 비워진 자리에 ‘물질의 무의미함’을 채운 후, 몰려드는 공허를 영원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캐스퍼 강의 별들은 허공의 무궁함으로 유동하면서도 황량하지 않다. 번득이는 것은 도리어 초월적인 울림이다.


[1] 김재필, 『한국의 천연염료』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47-48.

 

조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