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나현 - 무의미함 속에 모두 별처럼 화려하게 타오른다, 2022

무의미함 속에 모두 별처럼 화려하게 타오른다[1]

 

프롬프트 프로젝트는 2022년 7월 14일부터 8월 14일까지 캐스퍼 강의 개인전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를 개최한다. 캐스퍼 강은 한지를 태우고 파쇄하거나 한지에 아크릴 물감이나 대리석, 콘크리트, 옻칠, 분채, 자개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그 물성 자체를 해체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무작위 한 배열은 열려 있는 추상의 상태로 존재하며 의미를 내포한 도상적 상징은 배제된다.

건축을 전공한 작가는 민화를 건축 설계도와 같은 구성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지 위에 정교하게 계산된 건축적인 선들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성해나가던 중 우연히 한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후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료 실험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지는 한국 고유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는 전통적 의미를 앞세우기보다 한지가 내포한 무한한 변형 가능성에 주목했다.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얇지만 질기고 내구성이 강하며 부드러운 한지는 다른 물성과 곧잘 섞이며 형태적 실험이 용이하다.

이러한 그의 탐구 과정은 다양한 이미지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그는 한지에 조심스레 불을 붙여 타다 남은 찰나의 조각들을 캔버스에 부착하거나 겹겹이 쌓은 한지의 틈을 갈라 그 틈새를 노출하고, 콘크리트와 같은 의외의 물성 위에 한지를 붙여 얇은 한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에 주목하기도 한다. 또한 한지를 반죽한 후 대리석 가루나 분채를 섞어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한지 위에 옻칠을 하거나 자개를 부착하는 등 끊임없이 낯선 조합을 실험한다.

작업을 이어나가던 중 우연히 드러난 파편들의 추상적 이미지는 전시 제목과 작가 노트에 적힌 아리송한 문장들과도 연결된다. 전시 제목인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는 얼굴의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뒤섞이며 흐르는 물이 눈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눈이 녹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리송한 상황을 의미하는 일종의 말장난 같은 속담이다. 이 문장처럼 그는 작업을 통해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포털 사이트 검색창의 자동 완성 기능으로 무작위 하게 나타난 문장들을 나열해 완성한 작가 노트에서도 명확한 의미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별, 별로, 별것, 그따위, 어떻게, 무엇을’ 등으로 시작하는 웅얼거리듯 내뱉어진 문장들은 맥락을 분산시키고 문맥과 의미를 약화시킨다.

그는 오히려 진정한 가치는 ‘무의미함’ 그 자체에 있음을 깨닫고, 한지가 가진 물성을 희석시키고 비우며 무의미함의 추상성과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에 집중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무언가에 대한 의미는 상호 합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어쩌면 임시적으로만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호로 이루어진 언어는 동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하는 사회를 추적하며 그 정의와 규율 등을 수정한다. 즉 의미는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축소 및 확대되는 등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의미는 유연하며 상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캐스퍼 강은 이를 인지하고 모든 의미 자체를 배제하며 자신이 깨달은 무의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물성에 대한 실험을 반복하며 작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실천적 태도는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그가 발견한 무의미함은 공허나 허무한 상태가 아닌 유한한 의미로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이며, 고착된 물성이 사라진 그 틈에서부터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이 시작될 수 있다.

 

맹나현


[1] 서문의 제목은 캐스퍼 강의《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전시를 위한 작가 노트에서 발췌했다.